본문 바로가기
자캐/샨바바 스노우

영웅과 그림자

by 길규 2023. 1. 8.

브금 틀어주시면.... 감사합니다... 근데 안틀어도 됨....





 아이들은 때로 순수함을 빙자하여 오만함을 보인다. 리리에트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샨바바가 그러하였듯이 말이다. 리리에트는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샨바바는 리리에트를 가엾게 여겼다.

 리리에트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당시 후플푸프의 반장이었던 선배가 그리핀도르의 반장에게 전할 것을 샨바바에게 부탁하였고 샨바바는 흔쾌히 승락하였다. 몇 장 되지도 않는 그리 중요하진 않을 종이를 그리핀도르 선배에게 가져다 주기 위함이었을 뿐이었으니 그리핀도르의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어 버린 것은 샨바바의 잘못이 아니었다. 또 호그와트에 보육원 출신의 아이가 입학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고 부모의 양육을 당연하게 여기는 학생들에게는 보육원이라는 존재는 자신과 먼 이야기였기에 리리에트에 대한 언급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니 선배들의 잘못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샨바바는 자신 또한 보육원에서 지금의 부모가 입양을 하였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선배들이 한 리리에트에 대한 이야기는 샨바바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선배들은 샨바바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순수한 오만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샨바바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리리에트를 딱하게 생각하며 어찌 됐던 자신은 저를 키워줄 부모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아이러니하지만 자신 또한 부모가 없기에 리리에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자만을 합치면 오만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밝고 명랑한 리리에트, 속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을까. 샨바바는 리리에트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리리에트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샨바바에게 리리에트는 가엾고 딱한 존재였다. 리리에트는 동정을 바란 적이 없었는데도 샨바바는 리리에트 모르게 동정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리리에트를 안타까운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샨바바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밝게 빛나는 영웅 뒤편의 그림자를 자신은 안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두가 동경해 마지못하는 영웅에게는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를 자신은 이해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고, 환상에 가까운 착각이었음을 자각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뽀삐의 탄생을 함께하는 순간까지 리리에트에게 묘한 감정을 느꼈다. 영웅의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길 바랐지만 리리에트는 그저 빛날 뿐이었다. 리리에트에게 그림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리에트의 그림자라고 생각한 부분은 실은 자신의 그림자였음을, 그동안 리리에트에게 품어왔던 감정들은 리리에트가 달라고 한 적 없는 동정이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회피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 회피하지 못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직면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음을 샨바바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치기 어린 시기였기에 부끄럽다는 감정이 들어 몇 번 씩씩대고 베개에 머리를 박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이상행동을 보이는 샨바바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뽀삐가 없었더라면 추하게 울분을 토하며 며칠을 꼬박 보냈을 것이다.




 샨바바가 후플푸프의 반장이 되었을 때 리리는 흥분했던 것 같다. 다른 기숙사의 반장인데도 제 기숙사의 반장을 축하하는 것 마냥 과하게 축하해 주었고 샨바바는 그 상황을 즐겼다. 전해주는 감정을 샨바바가 온전히 납득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리리였다. 리리는 크고 작은 일 모두 언제나 샨바바의 행보를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 주었다. 샨바바는 많은 것들을 습관처럼 의심하였지만 리리의 말은 의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샨바바에게 리리는 끝없이 솟는 우물같은 존재였다. 부모가 없다는 것에 샨바바는 콤플렉스를 가졌을 때, 리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샨바바가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지내고 있었을 때, 리리는 한결같았다. 샨바바가 졸업 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허우적거렸을 때 리리는 의지가 되어주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티끌도 없이 빛날 수 있을까. 리리는 샨바바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때 리리에게 어두운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한 것도 부끄러운 오만이었음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 잦았다. 리리는 샨바바의 모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샨바바는 그런 리리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심정으로 리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리리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그림자였기에, 언제나 빛나는 리리의 곁에 서면 자신의 그림자가 짙어짐을 느꼈다. 이는 샨바바와 리리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애정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재회하였을 때 리리는 샨바바에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샨바바도 리리에게 별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시시한 이야기를 몇 번 건네다 끊기기를 반복했다. 몇 년 만에 만난 리리는 샨바바에게는 이제 부담스러운 존재임이 분명하였다.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그림자를 더욱 부각시키는 사람이었기에 학창 시절의 우정과 믿음, 신뢰는 이미 추억 저편으로 묻어버린 지 오래되었을 터였다. 분명 그랬을 텐데, 리리의 곁에 있으면 언젠가 자신도 리리같이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리리의 빛이 너무 강하다 보니 나의 그림자도 빛에 잠식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이기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을 받았다.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어지러움이 어느 순간부터 편안해지는 때가 왔다. 샨바바는 본능적으로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많은 것들을 후회하기엔 늦었으니 되려 웃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동시에 리리라면 이런 자신의 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져서 생각해 보았다. 아니, 생각해 보고 싶었다. 몽롱함에 취해 생각하는 것마저 할 수가 없었다. 흙과 먼지, 돌무더기 사이에 누워있는 자신을 본 리리는 어떤 반응을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빛나는 영웅이라도 친구의 죽음에도 빛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친구인 걸까. 나는 아직 친구이고 싶은데. 샨바바는 리리와의 우정을 아예 추억 저편으로 묻어버리진 않았음을 어렴풋이 실감하였다. 마지막으로 리리와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친구가 맞냐고 물어봐야지. 많은 것들을 후회하기엔 늦었으니 되려 웃어버리자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자신이 웃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캐 > 샨바바 스노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미래의 유가족 인터뷰  (0) 2022.11.03
샨바바 인어 에유  (0) 2022.11.02
수수께끼의 알  (0) 2022.10.31
해포커 러닝후기 (1편)  (0) 2022.10.31

댓글